본문 바로가기

학교/교사역할훈련

T.E.T.가 시작되는 곳, GTI 본사 방문기

T.E.T.가 시작되는 곳, GTI 본사 방문기

 

 


과연 샌디에고(Sand Diego)의 명소 중 하나라 불릴만 했다. 앞으로는 비취에 햇살이 부서지듯 눈부시게 푸르른 태평양이 번쩍거렸고, 옆으로는 샌디에고 시내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가장 아름다운 미국 해변에 꼭 순위를 올리는 코로나도 비치(Coronado beach)가 저 멀리 눈에 들어오고 지척에 자리잡은 해군부대에는 수시로 비행기와 전투함이 드나들어 장관을 이뤘다. 1년 내내 날씨가 따뜻해서 사람들이 여유로운 곳,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 중 하나인 포인트 로마(Point Loma)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언덕에 미군 국립 묘지가 위치하고 있다. 교사역할훈련(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을 개발한 토마스 고든 박사(Ph.D. Thomas Gordon)가 영면 후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은 기온이 영하 10도로 떨어지고, 뉴욕(New York)은 기록적인 한파를 기록하던 20162,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샌디에고에서 30분 거리의 솔라나 비치(Solana beach)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렌트카의 운전대를 잡았고 T.E.T 마스터 트레이너 김원석 교수님, GTI Korea 이도영 대표님이 함께했다. 따뜻한 날씨에 모두 가벼운 자켓만을 걸쳐도 충분했다. 솔라나 비치는 교사역할훈련을 전세계에 보급하고 교육하는 고든 트레이닝 인터내셔널(Gordon Training International, GTI) 본사가 위치한 곳으로 고든 박사가 마지막까지 일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그의 부인 린다(Linda Adams)와 딸 미셸(Michelle Adams)이 갈등하는 부모-자녀, 교사-학생, 회사 간부-직원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보급하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린다와 미셸, GTI의 직원들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김원석 교수님과 GTI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친구처럼 인사를 주고 받았다. 건너편 창고에서 아프리카로 보낼 교재들을 준비하던 직원들도 우리를 맞기 위해 달려나왔다. 그들은 김원석 교수님, 이도영 대표님과 인사를 나눈 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국에서 T.E.T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근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사들이 T.E.T를 익혀서 학생들과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효과를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저이기도 하고요. 항상 고든 박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고, 미국에 올 기회가 생겨서 GTI 본사에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소개를 하자 미셸이 밝은 얼굴로 나를 껴안아 주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GTI 가족의 안내로 응접실에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마침 발렌타인 데이라 테이블에는 하트모양 초콜렛이 올라와 있었다. 행동의 창 그림 걸려 있는 벽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 없는 영역 안에 초콜릿과 같은 모양의 하트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창 속, 문제 없는 영역이야말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신뢰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영역이다. 나 역시 T.E.T 덕분에 아이들과 문제 없는 영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매일 같이 화를 내던 교사였지만 T.E.T를 배우고 난 뒤로는 1년 동안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별 건 아니지만 가벼운 식사를 준비했어요. 한국에서 T.E.T를 보급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오셨으니까요.”

GTI 본사에 직원들이 많지는 않았다. 대여섯명 정도의 직원들이 전세계에 프로그램 책자를 보내고, 트레이너 양성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각 주의 수 많은 T.E.T 트레이너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워크숍이 있거나 할 때마다 본사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했다. 이 적은 인원으로도 전세계 곳곳에 효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있으니 정말 체계적이 조직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는 일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고 했다. 점심 시간 없이 일하는 대신 일찍 퇴근한단다. 옆에서 보니 일을 할 때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린다와 GTI 가족들은 평소와 다르게 우리를 손님으로 반겨 점심 식사를 준비해주었다. 미국에서 최근 건강식으로 인기가 많다는 멕시칸 타코 요리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녹색의 아보카도 소스, 붉은 토마토 슬라이스, 갈색으로 잘 구어진 쇠고기, 재료들을 싸먹을 수 있는 또띠아 등의 음식이 테이블 가득했다.

나는 린다에게 고든 박사가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많은 교사들이 고든 박사에게 고마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워크숍 때에는 항상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고든 박사의 사진을 붙여놓지요. 23일의 워크숍이 끝나면 T.E.T 프로그램을 만난 것에 대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리고 T.E.T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모르고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저 역시 T.E.T 덕분에 학교 생활이 행복한 교사가 되었고,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이 모든 것이 고든 박사님 덕입니다. 고든 박사님이 제 삶을 10배는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미망민의 지나간 추억이 떠올랐을까? 린다의 눈은 고든 박사와 함께 했던 지난 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픈듯도 한 표정이 스쳐갔다. 지금 이 자리에 고든 박사가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떠난 이의 자리는 비어있지만, 대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피플 스킬들을 남겨놓았다. 린다는 한국에서 T.E.T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교사들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국의 워크숍 보다 한국의 워크숍이 더 발달된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T.E.T 트레이너들은 대부분 교사들인데,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적용 경험이 많아 워크숍 참가자들과 유대감이 깊다. 마스터 트레이너 김원석 교수님과 GTI Korea 이도영 대표님이 10여년간 꾸준히 노력해오셨기 때문일 것이다.

“Thank you.”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가 되자 린다와 미셸이 우리 일행을 번갈아 안아주며 말을 건넸다. 태평양을 건너야 만날 수 있고, 인종, 나이, 언어, 환경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반갑게 인사나눌 수 있다니. 고든 박사의 업적은 피플 스킬만이 아니다. 그의 연구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My pleasure.”

고마움을 표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T.E.T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덕분에 내 삶이 얼마나 변화했는가. 마지막 인사말을 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는 미군 국립묘지를 찾아 고든 박사를 참배하기로 했다. 고든 박사는 젊은 시절 리더십을 지도하는 교관으로 군에서 장교 복무한 적이 있다. 노고를 인정받아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샌디에고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언덕, 포인트 로마가 그곳이다.

햇빛이 사선으로 비치는 오전, 미셸이 아침부터 우리를 맞아주기 위해 국립묘지 입구로 찾아왔다. 듣던대로 주변 풍경은 장관이었다. 도시, 군부대, 바다, , 비행기와 함선, 짙푸른 태평양 바다, 저멀리 멕시코까지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호텔이나 고급 리조트가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곳에 국립묘지가 있는 것을 보니 미국 국민들이 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졌다.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연을 담은 백색의 비석들이 주인을 모시고 끝 없이 도열해 있었다.

“Let there be peace.”

고든 박사의 유해를 덮은 작은 비석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열망이 아로새겨 있었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그의 삶을 요약하는듯 하다. 가정에서는 부모-자녀의 평화를 기원했고, 학교에서는 교사-학생의 평화를 기원한 그였다. 바람은 기도로 그치지 않았고 그의 연구는 문제 해결 프로그램으로 실현되어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제로 내가 바로 그 증거이다. T.E.T를 만나고 나의 교실과 삶은 훨씬 평화로워졌다. 우리 일행은 작은 장미 다발을 그의 비석에 올리고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짧은 생각이 스쳐간다. 삶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이제는 의학이 많이 발달했지만 인간의 삶이란 한정된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편도 열차와 같다. 누군가는 다른 이와 지속적으로 갈등하며 괴로운 삶을 살 것이고, 누군가는 지인들과 정을 나누며 따뜻한 삶을 살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떠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두 고든 박사처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업적을 세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든 박사가 그의 연구를 잘 정리해 두었지 않은가. 행복한 삶이란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작이 T.E.T에 있었다. 한국의 더 많은 교사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학교가 더 행복해지기를, 고든 박사의 영전에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