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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괜찮다, 망해도

1-2-3 매직 초벌 번역을 마쳤습니다. 8월에 개정판 한/미 동시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윤문 작업은 안하고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할 일은 안 하고 자주 이렇게 샛길로 빠집니다.;; 그래도 신규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두괄식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문단 첫문장만 읽어도 주요 골자는 아실 수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행복교실에 다녀왔다. 고마운 행복교실, 항상 기대보다 나를 만족 시켜준다. 1박 2일의 워크숍 동안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동시에 행복해서 정말 좋았다. 벌써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모임 중에 젊은 남자 선생님 한 분이 다가오셔 인사를 건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젊은 선생님이시네요."
“네, 올해 2년차입니다."
“와! 2년차에 이런 연수를! 정말 대단하세요!"
나도 정유진 선생님을 초임 때 만났다. 초임 때 이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지금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교실에서 공부하시는 게 도움이 좀 되세요?"
“네, 정말 많이 배웁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도 많고 좋은 분들도 많고…"
말끝을 흐리신다.
“학교 생활은 할 만하세요?"
“네,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네?"
“사실은 제가 경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이들 생활 지도가 거의 안 되거든요. 4명 정도 아이가 저를 힘들게 하는데 전혀 감당이 안되네요."
“아…"
드리고 싶은 말씀이 한 무더기로 생각났는데 다시 워크숍 시간이 되어 대화를 마쳤다.

초임교사들은 학급 운영이 잘 안되는 것을 괴로워 한다.
초임교사들은 학급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거나 생활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듯한 생각도 들고, 괜히 이 직업을 선택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는 괜히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이 착하고 여린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래 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연수도 찾아 들어보고 책도 뒤적거린다.
옆반 선생님에게 자문도 구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대단하고 뛰어난 선생님들로만 가득한 것 같다.
연수를 찾아 강사 선생님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듣다보면 뻔히 해결책이 있는데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롭다.
잠 못 드는 날의 연속이다.
여기저기서 받은 조언들을 나름 조합하고 정리해서 교실에 적용한다.
결과는? 망한다.
당연한 일이다.




초임 교사가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Katz(1972)는 예비학교 교사들의 발달 단계를 4단계로 구분했다.
생존기(survival)-강화기(consolidation)-갱신기(renewal)-성숙기(maturity)가 그것이다.
생존기는 교직 초기 1,2년에 해당하며 이 시기의 교사들은 자신이 이 직업을 할 수 있는지 꾸준히 의심하며 힘겹게 기존 조직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강화기는 교직 입문 후 3년 이내에 해당하며 생존기에서 익히고 배운 내용들을 반복하고 검토하며 조직에 익숙해지는 시기이다.
갱신기는 교직 경력 3-5년에 해당하며 교사가 권태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로 기존에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방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시기이다.
성숙기는 교사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거시적인 안목과 나름의 관점을 갖추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Katz는 성숙기는 교사에 따라서 빠르게는 교직 3년차즈음 나타나기도 하며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초임 1-2년 혹은 길게 보아 1정 연수를 받기 전까지의 교사들이 해야할 일은 오직 “생존”이면 충분하다.
대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은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학부과정에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초임 교사들은 학교에서 신생아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초임교사이건 중년교사이건 할 것 없이 대부분 비슷한 업무를 주고 비슷한 수준의 업무 처리를 기대한다.
죽어라 열심히 하는 초임보다 대충 놀면서 15년을 지낸 교사가 학교일을 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 학교 문화는 초임 교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며 경험 제공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많이 망할수록 많이 발전한다.
나는 작년에 야심차게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대충 언급하자면 유명한 교사들을 만나 궁금했던 점을 묻고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어 세간에 공개하려고 하였다.
나는 이 일에 깊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상에서 영상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당시만 해도 영상 작업에 몰두하는 교사들은 내가 아는 한 많지 않았다.
게다가 훌륭한 교사들의 집약적인 노하우와 경험을 짧은 영상에 담아 일반에 공개한다면 여타의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대중의 학교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실제 작업 결과를 가늠하기 위해 파일럿도 2차에 걸쳐 제작했다.
공개하지 못한 2개의 파일은 아직도 내 유튜브 계정에 남아있다.
실제로는 만나기 어려운 유능하고 저명한 교사들을 동료 교사와 함께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영상을 편집해서 공유하려던 이 작업은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함께 파트너로 삼고자 시도했던 팀을 내가 설득하지 못했다.
지금은 에듀니티에서 비슷한 영상이 제작되어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이 정말 많다.
다른 사람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으며, 영상 편집 방법을 익혔고, 좋은 카메라와 좋은 녹음기를 장만했으며(언제 다시 쓸지 모르지만), 유튜버들의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살폈고, 당시 온라인의 트렌드를 리서치했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즐거운 추억도 만들었다.
나는 앞으로 비슷한 일을 한다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실수하지 않았다면 다음에 비슷한 실수를 했을 것이다.
지난 주 행복교실 워크숍 2일차에 식당에서 서준호 선생님께 잠시 인사드릴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하는 일 중에 잘 안되는 일도 많네요.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또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겠어요."
함께 1-2-3 매직을 번역하는 행복교실 개발자 정유진 선생님은 말한다.
“나도 참 부족한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고 실패하는지 몰라. 그래도 한 가지 신념이 있지. [실패는 없다. 피드백만 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사람이다.
실패를 기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실패 이전에는 도전이 있었을텐데, 도전만으로도 당신의 노력을 인정받을만 하다.

망해도 괜찮다.
강의를 나가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 학생들 상담하고 지도하시다가 더 화가 나서 이야기 못들어주겠다 싶을 때 있으시죠? 처음에는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려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요 미운 녀석이 계속 친구들 욕만 하고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얄밉게 이죽거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상담 그만하시고 아이를 들여보내세요. 그래도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도 성숙한 교사에게는 지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아이들의 행복에 신경쓰기에 앞서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데 교실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교사가 행복하면 그 교사가 가르치는 교실은 별 걸 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생활 지도 방법, 교수법보다 선생님들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임 선생님은 망해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망하는 게 당연하다. 잘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우리는 표현은 잘 하지 않지만 대부분 매일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진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선생님들도 매일 실수하고 실패한다.
다만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자책하지 말기를.
무엇인가에 익숙해지고, 기술을 습득하고, 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힘든 시간은 다음 단계를 위한 예비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RPG 게임에서 레벨업을 위해 지루하고 힘들게 경험치를 얻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힘내시길.

지금도 당신의 경험치는 꾸준히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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