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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성폭력 예방 연수라는 이름의 폭력

나는 남교사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여교사가 많습니다.
거의 9할에 가깝습니다.
1학기를 마칠 즈음 우리 학교 보건 선생님이 성폭력 예방 연수를 해주셨습니다.
예로 든 사례 자체가 듣고 있기에도 낯이 뜨거울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저런 짓을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연수를 다 마치자 연로하신 남교사 한 분이 질문삼아 이야기하셨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며 여러번 성폭력 예방 연수를 들었어요. 그런데 사례라든가, 규정들이 너무 남자를 예비 범죄자처럼 몰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연수를 듣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남교사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우리가 더 몸조심해야겠네요. 심하면 파면까지 당한다니."
저도 손을 번쩍 들어 한마디 하려다 말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을 면박주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여성이 약자인 사회입니다.
과거에 비해서는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지만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평균 임금, 사회 참여, 기회 보장에 있어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격차가 잘 보이지 않거나 우리가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을 따름이지요.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을 막론하고 관리 계층에 남성의 비율이 현저히 많은 것을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권력을 나눠줄 수 있는 권력을 남성이 쥐고 있으니 여성에 권력을 나눠줄리 만무하지요.

그래서 여성은 쉽게 폭력에 노출됩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행하는 힘은 저항이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힘은 폭력이 됩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무서운 점은 약자가 스스로 폭력에 굴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감추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나? 상황이 커지면 나에게 피해가 더 많아질거야.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지?"
여성이 약자인 사회 구조 자체가 적극적 의사 표명을 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성폭력 예방 연수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어떤 남성들은 성폭력 예방 연수가 남성을 배려하지 않는 폭력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가 토끼의 잔펀치를 두려워하는 격입니다.
그 안에는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는 권리와 권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본능이지만, 그 본능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폭력이라면 멈춰야 하지요.
그러니 여성분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내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시기 바랍니다.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아울러 남녀의 권리, 책임이 평등해지기 위해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자와 여자의 권리가 동등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학교는 종종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역전되는 곳입니다.
남교사들은 난이도가 높은 업무, 힘을 써야 하는 업무, 운동장에 나가야 하는 업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업무에 쉽게 배정됩니다.
이런 상황을 당연히 여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여자는 몸이 약하니 힘든 업무는 하기 어렵다며 당연한듯 이야기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짓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녀 평등 운동이 지향해온 바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일입니다.

성폭력 예방 연수는 폭력이 될 수 없습니다.
남성이 강자인 사회에 익숙해져 단맛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불쾌함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면 안됩니다.
사회 전체의 인식과 구조, 법률은 이미 남녀 평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인식으로 현재를 살면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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