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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뻑하면 울어대기 일쑤다. 숙제를 안 해왔길래 벌칙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억울하다며 나를 흘겨본다. 시험지 채점 결과를 확인하는데 몰래 답을 고치다 걸려놓고는 왜 울어제끼나. 수행평가를 친구랑 같이 하고 싶다는 걸 안된다 했더니 5분 정도 책상에 엎드려 미동도 않는다. 맛 없는 반찬이 나왔다고 울고, 엄마랑 싸웠다고 울고, 친구들이 놀려서 울고, 선생님이 밉다고 울고. 아이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샘은 걸핏하면 폭발이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눈물쟁이들이 없다.

교직 생활 10년차에 접어들며 매일을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낸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 부동산 정책의 혼란과 인플레이션, 남북 관계 경색, 중미일 사이에 낀 외교에 대통령이 정신 없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맑다. 밝고, 순수하고, 거짓말하고, 모른척하고, 서로 화내기 바쁘다. 아이들의 감정과 언어에는 숨겨진 의도가 따로 없다. 하고 싶은대로 재잘대고, 겉과 속이 같다. 그래서 나도 위장을 할 필요가 없다. 꽤 젠틀한척 폼잡을 필요도 없고, 매너를 따지며 어른스러운 척 할 필요도 없고, 모르는 걸 아는 척 할 필요도 없고, 아는 걸 모르는 척 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말싸움도 하고, 합의도 하고, 웃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선생 아닌가?

그러다 나도 아이들처럼 눈물이 날뻔 했다. 초임 시절 읽었던 임길택 선생님의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2004)]가 문득 생각나서. 막 교직을 시작하려던 시기에 종종 술을 사주던 선배가 책 좀 읽으라며 추천한 책이었다. 한참 다독多讀하던 시기였다. 바로 주문해 읽어 보았다. 책에서는 풀내음, 흙내음, 아이들의 침냄새가 나고 새소리, 웃음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은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기억들을 목욕탕에서 속살 보이듯 내놓고 있었다. 별 거 아닌 일로 싸우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어찌 해보려다 화를 참지 못하고 매를 드는 선생, 제풀에 지쳐 스러지는 풀과 나뭇잎과 바람. 책을 열고 들어가면 흙먼지 날리고 매미 소리가 쨍쨍하게 울리는 더운 여름날의 시골 학교로 전학갈 수 있었다.

뻑하면 울어재끼는 요 녀석들이 뭐가 좋다고 책까지 써냈을까. 선생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리 좋은 선생도 아니었고, 친절하고 단호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싸우고 다툴 때 적절한 대처를 몰라서 혼내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면서 뭐가 좋은지 표지에는 아이들과 씨익 웃고 있는 사진을 표지로 박았다. 아이러니다. 우는 것들을 실컷 혼내기만 해놓고 사랑한다고 제목을 썼다. 안에는 서로 투닥거리고 다투고 상처주고 할퀴고 후회했던 이야기만 가득 써놓고는 겉사진은 다 잊은듯 웃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마음이 아리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10년이 넘게 지난 우리 교사들은 이제 더 많은 수단이 있다.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도 좋은 관계를 맺는다. 임길택 선생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공부했더라면. 그러다가 책을 덮으면 독자 입가에는 이상하게 미소가 떠오른다. 방법이야 어찌됐건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의 맹목과 순수가 책 가득 묻어나니까.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두 가지가 이해 안 됐다. 하나는 아이들을 "우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때는 왜 아이들이 우는 것들인지 몰랐다. 선생 10년 해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아이들은 걸핏하면 울어재낀다. 기분이 좋다고 울고, 속상하다고 울고, 마음에 안 든다고 운다. 눈물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무기이다. 우는 것 외에는 달리 자기들이 원하는 걸 해낼 방법이 없다. 아이들에게 눈물은 유일한 소통수단이다. 

둘째는 우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쓴 것이다. 우는 것들이 뭐가 좋은가. 나는 웃는 것들이 좋다. 우는 것들은 함께 있으면 노상 피곤해지기 일쑤다. 우는 것들은 불만이 많다. 세상이 원치 않는대로 되니 우는 것이다. 세상 이치대로 살면 울 일이 없다. 능력만큼만 바라고,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으면 울 일이 없다. 소박하고, 부지런하고, 겸손한 사람은 울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운다. 제 멋대로고, 게으르고, 인정 욕구에 휘둘리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울어도 사랑받을만 하다. 맑고 밝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어른에게는 선물이니까.

내가 교직에 들어오기 한 해 전에 임길택 선생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 여섯의 나이로 영면하셨으니 한참 글을 쓸 시기에 우리 곁을 떠난게다. 초임 시절의 젊은 교사는 이해하지 못할 글을 쓰던 동화작가. 10년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만들어준 선배 교사.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또 어떤 글을 써내고 있을까?
"선배, 이제 아이들에게 화 안내도 돼요. 화 안내도 아이들이랑 잘 지내는 방법이 많아요. 그리고 매는 절대 안돼요."
이렇게 말하면 그는 뭐라 답할까. 우리 때는 다 그랬다고 어깃장을 놓을까. 한 번 씨익 웃고 술이나 따르라고 할까. 

**임길택(2004).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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