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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을 잘 하는 비~이버업!!

몇 시간 전에 초임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마음으로 [괜찮다, 망해도]라는 글을 썼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혼자 히죽히죽.
삘 받아서 행복교실 2차 소감문이자, 수업을 잘 하는 비이버업!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여러분, 이 글만 읽어도 당신은 우리 동네 수업 대장!!! 빰빰빰빰 빠라빠라바라밤~~!



[수업을 잘 하는 비~이버업!!]

사람들이 나보고 수업 잘 한다고 한다.
2016년 5월 행복교실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체계적 교수학습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토론 주제로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가 주어졌다.
약 20여분의 선생님들이 좋은 수업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소견을 나눠주셨다.
깊은 통찰과 울림, 식견, 노하우가 가득 나왔다.
토론을 마치고 주제에 대한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 발표하신 참가자의 말을 정확치 않게 옮기면 이렇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좋은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좋은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다중지능이론을 활용합니다.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적용합니다. 학생들의 신뢰를 얻고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교사의 여유로운 마음가짐도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해야 합니다. 교사가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다양한 고민과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즐거워야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모으면 박종근 선생님 수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보! 브라바! 브라비! 브라베!
독자 여러분 그거 아시는가?
돼지 눈에는 돼지가,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
선생님들의 과찬에 나는 예의를 갖추어 보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5초 정도 만세 자세를 취한 뒤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여러분 훌륭하십니다. 인재를 알아보시네요."




나는 내 수업을 아끼고 사랑한다.
나중에 내가 교사가 왜 되었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이 직업을 정말 사랑한다.
나는 점수 맞춰서 교사가 되지 않았다.
이 직업이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했고 노력해서 성취했다.
그리고 잘 하고 싶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을 잘 하는 것이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름으로 노력했고 내어놓기 부끄러운 수준의 노하우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수업을 즐길 수 없다.
나는 잘 해야 수업도 즐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잘 하면 더 즐겁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수업 잘 하는 비법은 무엇인가?


수업을 잘하는 방법은 뻔뻔함이다.
너무 쉬운가?
위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내어놓은 좋은 수업의 조건들을 살펴보자.
누군가가 나에게 ‘저 조건들 중 몇 가지나 <완벽하게> 충족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제로다. 영. 빵. 없음. 무.
그러나 누군가 ‘저 조건들 중 <몇 가지나> 충족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많다.
거의 전부 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이 내 수업에서 아주 조금씩이나 발현되고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애초에 수업을 준비하면서 다중지능이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본다.
수업이 끝나고 생각해 본다.
'오늘 수업은 다중지능이론을 고려하지 않았지. 거의 평소와 다름 없이. 다중 지능 이론을 고려한 수업을 준비해본 적도 없으니까. 그래도 오늘 아이들에게 내가 시범을 보이고 설명을 했으니 시각과 청각은 충족시켰군. 같이 몸을 움직이는 활동도 했으니 이것도 괜찮아. 신체 감각을 자극했어. 음.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퍼펙트! 최고야!'
거의 대부분의 조건들이 이런 프로세스를 거쳐 자기만족으로 이어진다.
어떤 방식으로 자기만족이 이루어지는지 사례를 더 들어보겠다.
나의 수업 반성 사례 1) 오늘 수업 완전히 망했다. 아이들이 말도 안듣고 수업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수업이다. 화도 안내고, 소리도 안 지르고. 90점!(T.E.T를 배우고 난 뒤 한 번도 아이들에게 화 내거나 소리지른 적이 없다. 그리된지 거의 6년 가까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수업에 메기는 점수는 90점이 최저다.)
나의 수업 반성 사례 2) 오늘은 수업이 아주 쬐~끔 잘 됐다. 개미 눈꼽만큼. 수업 끝나고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를 시작하고 자료 정리를 도와줬다. 귀요미가 와서 내 흰머리도 뽑아줬다. 대박! 킹왕짱! 뭥미! 나 너무 멋진 거 아님? 완전 우리 동네 페스탈로치임!
아시겠는가.
내 수업의 비법은 자기만족이다.
나는 남들의 평가에 거의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격려한다.

유태인들에게는 후츠파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후츠파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독특한 정신으로 끊임없이 쇄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자 생존의 비결로 손꼽힌다.
유대인의 창의성이 후츠파 정신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후츠파 정신은 7가지 정신 요소를 가진다.
1) 형식타파(informality)
2) 당연한 질문의 권리(Questioning Authority)
3)섞임이나 어울림(Mash-up)
4)위험 감수(Risk-taking)
5)목표 지향(Mission-oriented)
6)끈질김(Tenacity)
7)실패 학습(Learning from Failure)
유대인들은 위와 같은 후츠파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급자와 대화할 때도 막힘없이 자신을 표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하 구분없이 솔직한 대화와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형식에 얽메이지 않으니 새로운 창의력의 무한히 형성된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히브리어인 후츠파는 “무례, 뻔뻔함, 철면피”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정신 중의 하나는 일종의 뻔뻔함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 수업을 뻔뻔하게 평가한다.
“잘 해 왔다. 잘 하고 있다. 잘 할 것이다."
당연히 못 하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고,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가능하면 내 장점과 내가 잘 하는 부분을 보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수업을 가장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잘 했다고 생각하면 잘 한 수업이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하고 격려하고 극찬하여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수업은 자신이 스스로 안다.
불가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다.
내가 잘 했다고 생각하면 잘 한 것이고, 내가 못했다고 생각하면 못한 것이다.


얼굴이 조금 두꺼워도 괜찮다.
동양인들을 보고 수줍음이 많고 과하게 겸손하며 소심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일부의 서양인들이 있다.
내 생각에도 우리 문화는 겸양을 너무 과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서는 못 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고,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 된다.
남들에게 자랑하면 손가락질 받는다.
나도 남들에게 하는 자랑질은 권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혼자서, 내 스스로, 나를 위해서, 오직 나에게만 자랑질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안 가고 남들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앞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행복교실의 수업 잘하는 교사로 박종근이 언급된 상황은 실제 이렇다.

다섯 명 정도의 교사가 모여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로 주제로 토의를 한다.
“자, 좋은 생각들이 있으신가요?"
다양하고 좋은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아, 좋다! 행복교실 참여하는 선생님들 정말 멋쟁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답변이 콸콸콸.
나도 한 마디 해야지.
“저는 교사의 만족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교사가 힘들어서 탈진하는 수업은 저는 지양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본인 수업에 만족하시나요?"
“네, 만족합니다. 완전히."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장난스레 발표지에 “좋은 수업은 박종근 수업”이라고 쓰신다.
그래서 그 옆에 별표 3개를 덧붙이며 한마디 했다.
“아, 이왕 쓸 거 좀 더 큼지막하게 써주시지."
여러분, 제가 이 정도로 뻔뻔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독자 여러분이 느끼셨을 실망과 분노, 원망, 어이없음이 글을 업로드하기 전부터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조언으로 글을 마친다.
정말로 수업 잘 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뭐냐고?
내년 행복교실에 참가하셔서 ‘체계적 교수법’과 ‘프로젝트 학습법’을 익혀 가시라.
기억하시라.
행복교실, 체계적 교수법, 프로젝트 학습법.
그러면 나 같은 야매 수업 명인이 아니라 진짜 수업 명인이 되실 수 있다.
그러니 농담으로라도 내 수업 보러 오겠다는 말씀은 마시길.
내 생각에 여러분들이 내 수업을 보고 느끼실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다.
“아, 수업을 저렇게 쉽게 할 수도 있구나. 근데 애들이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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